공정함에 대하여
흔히 말하는 "젊은 세대의 보수화" 내지는 "젊은 남성의 보수화"는 여러 렌즈를 통하여 보아야 합니다. 교육이 문제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가 문제다, 특정 정치인이 문제다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그 또래집단에 속한 제가 보기에는 이 현상은, 젊은이들 나름대로 사회를 체험하고 사회에 적응한 결과물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관련하여 아래는 경상국립대학교 신지영 교수님의 기고 "평등이 불공정하다고?" 에 대해 제가 질문한 글이며, 갈무리하는 차원에서 이 블로그에도 옮겨둡니다.
안녕하세요,
우연찮게 이 홈페이지와, 교수님 포함 구성원 분들의 여러 글들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게시판 Everyday Philosophy 의 평등이 불공정하다고? 에 대한 댓글입니다. 댓글란에 적다가 500 바이트의 제한을 가뿐히 초과하여 게시판으로 옮겨보는 것입니다.
1.
개인의 어떠한 능력이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지는 개인과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결정되기에, 그 부가가치에 따르는 보상이 오로지 개인의 업적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음을 지적하셨다고 이해하였습니다.
덧붙여 생각하자면, 어떠한 성취는 결과이자 미래의 또 다른 성취를 예비하는 기회이게도 하기에, "기회의 평등" 대 "결과의 평등"의 단순한 대립항 구조로 논의가 한정된다면 (실제 현실의 논의가 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기회-결과의 상호작용이 작동하는 실체를 논의에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으로 대학 입학을 들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n수생 등 수험생 입장에서야 대입 성과는 "결과"이겠지만, 대학교육과 이후의 생애소득, 자아실현의 기회간 연관성을 보는 입장에서 대학 입시 결과는 "기회"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학 평준화는 누군가에게는 "결과의 평등"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평등"일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 차이가 인식되고 해소되지 않는 한 생산적인 논의가 제한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어떠한 업적이나 결과가 다음 업적을 위한 기회를 촉진하는 일종의 승수효과는 사회 여기저기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이 극단으로 나아가 아예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이득을 얻는 "지대"의 수준에 이른다면야 부당함이 있다고 쉽게 논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정도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러한 승수효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느 한 극단의 주장은 "그러한 승수효과는 엄밀한 기회의 평등에 걸림돌이 될 뿐이므로 가능한 제거함이 옳다" 가 되겠지만 이는 사회 전반적인 성취가능성을 많이 제한하겠고, 반대의 극단을 채택하면 기회의 평등을 제한하는 여러 요인이 "그것은 돌고 돌아보면 결국 과거의 어떤 노력의 결과였다" 라는 논리로 정당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정의로운 중간 지점이 어디에 있을까요? ("성취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억지로 제한할 수는 없겠지만, 승수효과를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 정도의 절충적 결론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2.
질문 2는 능력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단서를 제시하고 여기에 대해 평가를 구하는 질문입니다. 질문을 하는 제가 30대에 갓 들어선 사람으로서 주위 또래집단의 "결과에 따른 공평한 대우"라는 가치를 지지하는 성향을 강하게 느끼기에, 이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공과 시장 중 어디를 더 신뢰하느냐"의 문제로 보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정의로운 재분배를 수행하여야 할 공공의 역량에 대한 강한 불신"이 뿌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공공 임대 주택 확대"라는 어젠다에 반대하는 젊은 층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얘네들이 소셜 믹스에 반대하고, 집값 하락을 걱정하며,임대 주택 입주민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가졌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 젊은이들도 자기 집이 없이 월세살이하는건 똑같고, 어차피 지금 머무르는 지역에 평생 있을 곳도 아니기에 소셜 믹스가 발생하건말건 상관할 바가 아니며, 집값이 떨어지는게 본인이게 손해이지도 않을거거든요.
"공공 임대" 라는 사회적 혜택을, 국가가 주도로 사회에 공평하고 정의롭게 분배할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반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회는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고, 그렇기에 손쉽게 "정규화"할 수 있는 사람과 가구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한계상황에 처한 다양한 친구들을 보아왔고, 각자 고유한 사유로 복지적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가족과 절연한 상태에서 나와서 살고 있는데, 기존 가구의 소득 때문에 나와 살고 있는본인의 기초생활수급권이 발생하지 않는 등)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의 사정을 편견없이 고려하고 사회적 자원을 정의롭게 분배할만한 제도를 확립하고 시행할만한 역량이 공공에 있는가 하면, 저 또한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평등은 불공정하다"라는 구호를 뒷받침하는 정서를 해소하는 방법은 대화와 논증을 통해 그 논리의 헛점을 지적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 "공공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역량"이 "시장 논리의 설명가능성과 예측가능성" 보다 우위에 서도록 하는 것이 보다 오래 가는 해답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과연 타당할지, 좀 더 실천성이 있게 구체화할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지, 관련하여 참고할 수 있는 글이 있다면 무엇일지 등등에 대한 고견을 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장호 올림